2008년말 17세의 한 남자 고등학생이 점심식사를 마친 후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급히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됐지만, 이미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이 없는 상태였다． 병명은 '뇌간 경색(Brain Stem Infraction)'． 뇌간 경색은 흔하지는 않지만, 발병할 경우 대부분 사망하며 생명을 건지더라도 식물인간 상태를 벗어나기 힘든 치명적인 질환이다．
처음 찾은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해 다시 다른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보조요법의 하나로 사람 탯줄혈액 줄기세포를 이식받은 환자는 1개월만에 눈동자를 움직이고, 울고 웃을 뿐 아니라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됐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세계적으로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 중증 또는 난치성 질환 환자들에게 희망을 던져주었고, 이 분야 연구의 선두에 대한민국이 있었다． 그러나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는 법적·윤리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데에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이 덮쳐 이 분야 연구는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0년 사람탯줄혈액에 줄기세포가 있다는 사실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과학자에 의해 증명됐고, 2003년부터 탯줄혈액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가 시작돼 배아줄기세포의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탯줄혈액은 분만과 함께 바로 버려지는 탯줄에서, 간단한 방법을 통해 얻어지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감염·출혈 및 만성통증 등의 위험이 전혀 없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또 탯줄혈액 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분화능은 떨어지지만, 이미 발생학적으로 발생이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기형종·기형암 등이 생길 위험도 없다．

특히 국제적으로 저명한 줄기세포 관련 학술지 에 게재된 논문에서, 줄기세포 가운데 뼈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비교한 결과 사산된 태아 줄기세포·탯줄혈액 줄기세포·성인골수 줄기세포·성인지방 줄기세포 등의 순으로 나타난 바 있다． 현실적으로 사산된 태아의 줄기세포를 사용하는 것은 윤리적 문제를 비롯 여러가지 제약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탯줄혈액 줄기세포가 가장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탯줄혈액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이 중증·난치성 질환 환자들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국내 한 대학병원에서 탯줄혈액 줄기세포의 치료효과는 물론 안정성을 증명한 사례가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17세 남자 고등학생의 사례에서 환자가 탯줄혈액 줄기세포를 이식받은 병원은 건국대병원이며, 담당의사는 장상근 교수(신경외과)다． 치료에 사용된 탯줄혈액 줄기세포는 ㈜히스토스템에서 제공했으며, 사람탯줄 혈액에 줄기세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증명한 한국의 과학자는 히스토스템의 한 훈 대표(전 가톨릭의대 교수)다．
　
　

장상근 교수팀은 이 환자를 비롯 모두 14례의 환자에 보조요법 차원에서 탯줄혈액 줄기세포를 이식했다． 이 환자는 1차(2009년 1월 19일)·2차(1월 21일) 치료후 경직된 근육이 이완됐으며, 3차(2월 12일) 치료후에는 시선이 고정되고, 사람을 알아보며, 물을 삼키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4차(3월 5일) 치료후 고개를 조금 세울 수 있게 되고 4월부터 재활의학과로 옮겨져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이후 5월 들어 동공을 좌우로 움직이고 목을 세우는 힘이 좋아졌으며, 손가락도 움직일 수 있게 된 이 환자는 현재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됐다.

발병당시

탯줄혈액 줄기세포 이식 15일후

탯줄혈액 줄기세포 이식 41일후

또 자살하기 위해 목을 맸다가 목숨을 건진 후 자가호흡은 가능했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였던 28세 여자 환자는 1차(2009년 4월 23일) 치료후 동공이 뚜렸해졌으며, 2차(5월 1일) 치료후에는 왼쪽손에 힘이 들어가고 목을 좌우로 움직이는 등 호전을 보였다．

이밖에도 뇌출혈·치매·뇌졸중·선천성 동맥기형 파열 등 모두 14례의 환자에 대해 보조요법으로 탯줄혈액 줄기세포를 이식해 치료효과를 보았다．

다만, 이들 환자에 대한 탯줄혈액 줄기세포 이식이 보조요법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상태의 호전이 탯줄혈액 줄기세포 만의 효과라고는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치료로 호전되지 않았던 환자가 탯줄혈액 줄기세포를 이식받은 후 호전을 보인 만큼 탯줄혈액 줄기세포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아울러 줄기세포를 사람의 치료에 사용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의 하나가 '면역거부반응 등 부작용이 없어야 한다'는 점인데 이들 환자 모두에서 면역거부 반응이 나타나지 않아, 특히 주복받고 있다．

 

면역거부반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조직 적합성 항원(Human Leukocyte Antugen, HLA)'에 대한 항체(Antibody) 검사가 시행된다．

서로 다른 개체간에 장기·조혈모세포·줄기세포 등 조직이식 때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주요인자를 생성하는 면역반응조절 유전자인 HLA의 주요 역할은 자신의 신체에 자신 이외의 물질이 들어올 경우 자신의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판단에 따라 자신의 것이 아닌 물질이 들어오게 되면 자신의 것을 보호하기 위해 HLA 항체가 생성되며, 이는 거부반응으로 나타나게 된다．

장상근 교수팀과 ㈜히스토스템이 14례의 환자 가운데 최소 2차례 이상 탯줄혈액 줄기세포를 이식하고 14일 이상 경과한 6명을 대상으로 HLA 항체 검사를 시행한 결과 6명 가운데 3명에서 HLA 항체가 발견됐으나, 이들 3명은 탯줄혈액 줄기세포를 이식하기 전의 혈청에서도 모두 HLA 항체가 존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식된 탯줄혈액 줄기세포의 HLA 유전자에 대한 항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탯줄혈액 줄기세포에 의해 형성된 HLA 항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장상근 교수는 "이식전의 혈청에서 HLA 항체가 발견되는 경우도 수혈·장기이식 그리고 여성의 경우 임신·출산과 관련해 HLA 항체가 많이 발견된다고 보고되고 있다"며 "HLA 항체가 발견된 환자 3명 모두 여성이며, 탯줄혈액 줄기세포의 HLA 유전자형에 대한 항체가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탯줄혈액 줄기세포에 의한 면역거부 반응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 훈 ㈜히스토스템 대표는 "탯줄혈액 줄기세포 치료는 특히 뇌경색에 있어 기존 치료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인 만큼 다양한 기초연구와 함께 임상연구가 함께 진행된다면 혁신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중증·난치성 환자의 새 희망이 되고 있는 탯줄혈액 줄기세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임상에 적극 활용되기 위해서는 보조요법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지원이 절실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